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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중국 무술은 크게 外家拳과 內家拳으로 나뉜다.
그 구분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외가권은 근․골․피(筋․骨․皮)를 주로 단련하고 내가권은 정․기․신(精․氣․神) 단련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중국 권법에 3대 內家門이 있는데 형의․팔괘․태극권이 그것이다.
(다만 경력배양법에서 각기 강조하는 점에 차이가 있다)
仙道도 정․기․신의 단련을 주목적으로 한다.
정․기․신이 조화로이 整合된 상태를 丹이라 한다. 따라서 仙道를 丹道 또는 丹學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내가권으로서의 태극권과 선도가 서로 상통됨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수련법이 動功 중심이냐 靜功 중심이냐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선도는 靜 속의 動을 귀하게 여기고 태극권은 動 중의 靜을 얻고자 한다.
정중의 동 ․ 동중의 정이 眞動․眞靜으로서 비로소 眞氣를 자극․생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옛 拳論에도 形体鬆靜에 眞氣自動이라는 표현이 있다.
태극권을 수련하기 시작하여 일정단계를 지나면 송(鬆)을 얻게 된다. 이때의 송은 수련방법으로서의 송을 말함이 아니라 鬆淨의 송을 말한다.
淨은 佛家에서 잘 쓰는 표현으로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는 뜻으로 앞에 맑을 淸자를 붙여서 잘 쓰고, 현대 중국에서도 돈 錢자를 붙이면 ‘땡전 한 푼도 없다’라는 강조어로 쓰인다 한다.
송을 얻었다는 얘기는 이 얘기이고 인체 경락적으로는 기경팔맥이 열리기 시작하는 첫 순간을 말한다.
이를 선도에서는 현관일규(玄關一窺)를 得하다 또는 개관전규(開關展窺)하다 라고 하는데 선도 후기의 오류파(오충허․유화양)에서는 소약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불가에서는 경안(輕安)이라 한다. 이것의 특징은 신체의 질병이 사라지는데 있고 그에 비해 대약은 정신에 있어서의 문제가 특히 잠재된 문제가 해소된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러나 소위 정신적 깨달음과는 아직 멀다.
초기의 선도에서는 대약이라는 표현은 있었으나 소약이라는 표현은 없었다.
cf) 당 최해범의 入藥經
송이 되면, 그리고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내경이 발생한다. 내경은 발생 형태․기간․경로에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이지 사람 따라, 경우 따라 제 멋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문파마다 화후(火候)는 다를지라도 차서(次序)는 동일한 법인 것이다.
내경이 발하는 것을 선도에서는 眞陽(氣)이 발했다, 또는 대약이 산출됐다,라고도 표현한다.
그 다음에 眞陽(氣)은 純陽(氣)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야 비로소 내경의 化와 發이 자유롭게 된다.
이를 옛 拳論에서는 ‘中氣(선도에서는 元陽이라고도 함)를 得하다’라고 하는데 이것을 얻게 되면 태극권 十代要訣의 首位 요결인 虛靈頂勁을 체현할 수 있게 된다.
즉 몸과 마음이 텅 빈 듯 꽉 차 있어 움직이면 걸림이 없는 것이 바람과 같고 멈추면 산과 같아서, 그 몸을 밀어보면 밀 곳도 없지만 또한 밀리지도 않는다.
이것은 임․독맥이 열리면서 중탁한 음기가 맑고 강한 양기로 대체되었음을 뜻하는데 임․독맥은 기경팔맥의 대표 경맥이고 기경팔맥은 우리 몸의 일반적 경락인 12정경맥과 달리 후천기가 아닌 선천기만이 열고 들어갈 수가 있다.
하지만 선천기는 평소에는 움직이지 않고 兩 腎 사이에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요가에서는 회음 쪽에 뱀이 똬리를 튼 형상으로 잠복하고 있다고 하며 쿤달리니 라고 칭한다)
임․독맥이 열려야 미려(꼬리뼈)에 기운을 떨어뜨릴 수 있고 나아가 유맥․교맥이 열리면서 발바닥 용천까지 기운을 내려 비로소 전체로서 身法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 얻은 기운을 中氣라 하는데 이를 일컬어 拳道之中樞 또는 太極이라 하고 중국 내가권법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중기가 有形에 접할 때 내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기를 득했다 해도 아직 神明의 단계는 아니다.
득의망형(得意忘形)적 단계이고 형신구묘(形神俱杳)적 단계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매우 아름답고 뛰어난 경계이다.
Ⅱ.
우리는 어쩌면 정말 우물 안 개구리일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보고․듣고․경험한 세계가 세계의 전부로 아는 그래서 스스로가 거기에 갇히게 되고, 살면서 문득 갑갑함을 느끼지만 그것이 어디에서 연원하는 지도 모르는.
바쁜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잊고 지내지만 ‘나라는 존재’ 자체는 거대한 의문덩어리이다.
태극권이 누구에게나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라고는 못 하겠다. 인연처는 서로가 다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 인연에도 강․약과 원․근이 있는 법이니까.
뒤돌아보면 구비마다에 누군들 기쁨과 안타까움이 없었겠으며 또한 우리가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인연이란 그런 것이거늘.......
도반의 뒷모습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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